문자상의 교류란 서로를 이해 하는데 항상 무리 따르게 마련입니다.
특히 어떤 글에 있어서 시적이거나 은유적이거나 비유 비사 상징성들의 의문의 글들이란
이해 하려는 사람의 개성이나 지성, 지향성에 따라 필자의 의도를 자기 의 방식으로 풀이를 하려 하는 인류의 속성으로 인하여
더욱 곡해가 있기 마련입니다. 더욱이 (여러 번 에 걸쳐서 말 하는 바 입니다만)
성경이나 모든 신서 예언서 들은 그 진의를 의문의 문자나 단어 나 문장으로 감춰놓았기 때문에
그것을 직접 기록 한 사람 조차도 그 뜻에 대하여 이해를 하지 못하고 다만 어떤 영감이 이끄는대로 기록
했다고 고백해 놓았으며.
그렇게 후대인 우리들의 세대에 까지 전수 되어 온 문서들이 다 그러합니다.
그래서 현대 신학자 이거나 과학자 수학자 등 형이하학을 추구 하는 입장에서는
그 의문의 문서들을 서술자의 본래 의도 대로 이해,해석하지 못하고
더욱이 영적 운영이라든지 계시라 든지 그러한 류들을 아예 자기 체면상태 로써
나오는 일종의 환각 이나 환상,환청의 류로 취급을 하려 하기 때문에 영적으로 그러한 문서를 깨달음 받았다는 사람들과 현대 의 학자들과는 좀처럼 의사소통을 이루기가 어렵습니다.(또한 그러한 환각 환상 환청들이란 그것을 경험하는 본인 은 성령의 계시로 굳게 믿는다 하더라도 그 역시 또다른 영에게 미혹된 상황이 허다 하므로 무엇이 진실이며 무엇이 허위인지 누구도 바르게 밝이며 쉽사리 믿어서는 안될일입니다.
혹 그 영적 체험이란 상황이 악령에 의한 허위 계시였다면 그것을 공유 하게 되는 많은 사람들 영적 피해를 입게 되며 적어도 그일에 착념하여 귀중한 인생의 시간들을 허비 하게 되기 때문)
현대 문명과 학문에 익숙한 사람의
입장에서 이러한 신서(성경과 모든 예언서 종교 서적. 포함)의 논리를 이해 하는데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남겨질거라 잘알고 있습니다.
성경은 절대적으로 이스라엘의 역사서도 아니며 신화적 소설도 아니며 교훈만으로써의 역활을 하는 책이 아닙니다.(물론 문자적인 겉모습은 그러한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1. 지구의 신화적 종교적 역사를 총합해 보면 여호와(야훼,엘로힘) 하나님 이란 호칭이 불려지기 이전 중동 과 아시아 이곳 저곳에서 성경안의 내용과 동일 한 신화들로 인하여
성경은 어려 나라 신화의 표절의 집대성이다. 라고 까지 증거 제시하는등 여러가지 이유를 들어 성경은 왜곡 오류 되었다. 주장하는 쪽
1.성경 유일신 하나님이 기록했으며 간수해왔다고 절대적으로 믿기에 성경을 교리화 하는 이들이 주장하듯이 세상에서 단 하나인 유일신의 영감의 감동으로 선지자 들을 통하여 기록 되어 전해져 오는 신서 라면 어느 시대 어느 국가 어느 이름으로 나타났든
경의 내용이 그 문서가 말하고자 한 내용이 여러 수난을 겪기도 하고 어느 대목은 일부 사라지기도 하고 일부 대목은 인간들의 종교성 합리화를 위해 가감되기도 하며 전수되어왔다 하더라도 그것조차 하나님 성령 역사하심이 아니겠는가? 라고 주장 하는 쪽
사람들은 위와 같은 이원론 의 50:50의 참과 허위를 두고 확증하기 위해 여러 논리와 역사적 사건 과 증거물들을 제시하며 양쪽 중 어느 한편으로 편협되어 쌍방간 어느 한쪽도 그 眞,假. 의 확실성도 없이 끝없는 공방만 분분하고 있습니다.
오랜 신화 나 전설 역사서 를 포함하고 있는 성경이
신의 메시지 이며 예언서 이다. 아니다. 의 어느 한편에 편협 되기에는
양쪽 모두 인간의 능력으로써는 확고한 논증이 불가능 하기에
신의 유무 와 그 신이 전승 했다는 신서.신화 들을 6하 원칙에 의하여 분별하거나 증거 하려 함의 이원론으로 편협 되어 논쟁하는 일들이 비생산적 인생의 낭비인것 같지 않은가요?.
그러므로 이런 제시를 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신의 진.가.를 놓고 확증 불가한 이원론으로 인간의 지혜와 시간을 낭비하는
6하 원칙에 메인 논쟁 보다는
언제.어디서 라는 과거형 불필요한 소모적 요소를 제외 하고
과연
누가?(신? 인류?)
왜?
무엇을?
어떻게? 하기 위하여
이런 이야기들이 생성 되었으며 그토록 오랜 세월을 전해져 온것일까?
에 대하여 깊이 헤아려 보는 일이
더욱 절실하며 우리 인류 자신들을 위하여 진취적 자세 일거란 생각이 듭니다.
위의 4요소 중에서 또한 당장 필요로 하지 않아도 可할 요소가 있는것 같습니다.
“누가?”입니다.
그 말들을 했던 이가 신 이거나 인류의 조상들이었거나 에 착념하여 밝히려 하는 일 역시
오늘날 이시대에 사는 우리 인류들에게 그리 필요한 일이 아닌것 같습니다.
누가?
보다는 .
왜.?
무엇을.?
어떻게.? 하자는것인가?
가 그 일이 과연 우리 인류들에게 어떤 혜택 과 이로움을 끼칠것이냐?
어떤 해악을 줄것이냐?
에 따라 현세를 사는 우리들에게
후세를 살아야할 우리들의 후대 들에게 절실한 문제 인것입니다.
누가?
우리에게 그렇게 말하고 그말을 어느때까지 간수 해오도록 한것이 누구였는가?
하는 문제는
왜?
무엇을?
어떻게 하자는것인가?에 의하여
그문제가 인류를...
이세상을...
얼마나 옳음 과 이로움으로 완성되어 질것인가?
하는 판단이 선다면
그전까지는 희미하게나 혹은 오류 왜곡되어 다른 모습으로 보이던
<누가?>가
그 옳음과 이로움을 완성하는 거듭남을 이룬후 라면 당연히 그 정체가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보듯 훤히 보이게 될것입니다.
그때에 확고한 모습을 보며 누구인지?
그를 칭송하든 그와 동행을 하든 하게 될것입니다.
그때를 바라며 지금 우리들에게 당면한 과제가 무엇이겠는가?
를 먼저 찾아보고 깨닫고자 논의 해봄이 선행 되어야 할거라 간절히 생각 합니다.
'나의 이야기 >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성경안에서 본 이세상과 천국의 질서(마4:1!11 내용 인용) (0) | 2010.04.29 |
|---|---|
| 인간인 한 하나님의 눈을 갖을수가 없는것인가?(빨랫감 님께 드립니다.)| (0) | 2010.04.09 |
| 누구의 하나님? (0) | 2010.04.06 |
| [스크랩] 진리는 있다 그러나 진리가 바로 선곳은 아직 없다. (0) | 2010.04.04 |
| 사람이 외로워서 신을 찾는다. (0) | 2010.04.04 |